평화 소식


‘통 크게’ 실패 인정한 김정은, 남북경협 손잡고 국제사회 나와야

입력: ’21-01-06 13:59  /  수정: ’21-01-06 15:15
확대보기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새해 첫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모든 주민 앞으로 친필 연하장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홈페이지 캡처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5일 개막한 노동당 8차 대회를 통해 솔직하게 경제 정책 실패를 인정해 다시 눈길을 끌었다.

6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개회사를 통해 지난해 마감된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이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됐다”고 실패를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대북제재로 인한 경제난에 코로나19 사태와 수해까지 삼중고를 겪는 사실을 ‘통 크게’ 인정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현실을 직시하고 정책과 추진 과정의 오류를 과감히 인정하며 치부를 감추지 않으려는 특유의 통치 스타일이 재현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위원장은 집권 초기부터 사회 각 부문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지적한 것은 물론 스스로의 잘못을 시인하거나 선대 정책까지도 비판하는 등 거침이 없었다. 지난해 시찰 때 비판적인 발언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등 관영 매체들에서 내부 치부를 지적하는 일은 이미 흔한 일이 됐다.

지난해 여러 노동당 회의들에서 부정부패 현상을 지적하고 간부 해임 사실을 공개하는가 하면, 태풍 피해 복구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는 과정에도 “건설을 날림식으로 망탕하는 고약하고 파렴치한 건설법 위반행위”를 꼬집었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은 2019년 금강산 시찰 중 김정일 정권에서 야심차게 추진했던 금강산 관광 정책을 ‘대남 의존 정책’이 매우 잘못됐다고 비판하는가 하면, 김정일 시절 모델로 내세웠던 협동농장을 낙후됐으며 오늘의 모델이 될 수 없다고 못 박기도 했다.

주민들에게 최고지도자로서의 자아비판을 하거나 대외적으로 일어난 불미한 사건에 대해서도 사과를 주저하지 않는 것은 솔직 화법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2017년 신년사에서는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 한 해를 보냈다”고 고백했다. 지난해 서해 민간인 피격사건 발생 이후 청와대에 보낸 통지문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준 데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하는 파격도 선보였다.

그는 또 중국인이 2018년 4월 북한 관광 중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등에게 위로 전문을 보내 “그 어떤 말과 보상으로도 가실 수 없는 아픔을 준 데 대하여 깊이 속죄합니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북한에서 최고지도자가 ‘무오류’의 존재이자 신격화 대상임을 고려하면 김 위원장이 모자람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잘못을 쉽사리 시인하지 않고 현지지도에서도 주로 격려하거나 칭찬하는 장면만을 공개했던 선대 김일성·김정일 집권기에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김일성 전 주석이 집권 말기인 1993년 12월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가 제3차 7개년 계획 결과를 평가하면서 “일부 중요지표들의 계획이 미달했다”고 밝힌 것이 그나마 드문 사례였다.

이상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은 잘못이 있을 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스타일”이라며 “당 초급선전일꾼대회에 ‘수령을 신격화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런 솔직한 사과가 조금 더 의연하고 커다란 현실 인식과 대처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경제정책 실패의 책임을 인정했으면 나아가 북녘 인민들의 참담한 처지를 벗어나도록 외부에 손을 벌리는 데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북한은 코로나19 환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도 주로 개도국에 백신을 조달하는 세계백신면역연합(GAVI·가비)에 백신 지원을 신청했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보도했다. 지난해 수해로 농작물 작황이 시원찮았고, 코로나19 차단으로 국경을 봉쇄하는 바람에 중국과의 교역도 원활하지 않아 경제난이 극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이 한 가닥 희망을 걸 수 있는 것은 남북과 북미 교류와 협력일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비핵화 평화 노선을 채택하고 인민들의 궁핍한 처지를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일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나흘 정도 이어지는 당 대회에서 철저하게 이 점을 인식하고 부디 그 결과로 전향적인 조치를 취했으면 한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124 (태평로1가) | TEL 02-2000-9040
COPYRIGHT ⓒ 2019 Seoul Peace Institute All Right Reserved.